"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올해 가장 기대하던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기위해 용산 CGV를 갔다.
굳이 용아맥으로 보겠다고 좌석을 구하다보니... 시간이 새벽이었다.
새벽임에도 사람이 제법 많았다.
밤 11시에 도착했지만, 앞으로도 4시간을 기다려야했다. 너무 늦은시간이라 어디 갈 곳도 없어서 CGV에서 도란도란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커피는 CGV 매장 안에서 주문했는데, 빅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메뉴가 있었다.
아주 직관적인 이름이라서 좀 웃기기도 하고, 얼마나 크길래 저런 자신있는 이름인지 인원수대로 3잔을 주문했다.
근데... 진짜 엄청 크더라. 이거 영화 보면서 마실 생각은 안 하는게 좋을 것 같다 ㅋㅋㅋ
안의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계단식 좌석에서 얘기하면서 기다렸는데, 새삼 CGV가 일부러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잘 조성해뒀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도 정말 많이 있었는데 혼자가 아니라서 기다리는 시간이 덜 지루했다!
이후 상영시간이 돼서 아이맥스관에 입장.
2시 45분부터 거의 아침 6시까지 3시간이라는 긴 런닝타임이라서 사실 중간에 잠들진 않을까 걱정도 많이했는데, 괜한 기우였다.
영화의 흡입력이 말도 안 되게 좋아서... 감히 올해 최고의 영화가 아닐까 추천해본다.
영화를 보면서 미리 알고 봐서 너무나도 재밌는 내용들이 많았는데, 이 내용들을 영화 끝나고 집에 가는길에 친구들에게도 열심히 설명해줬다. (듣고싶어하진 않았지만 중요하지 않지 ㅇㅇ)
영화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있어서 설명글은 가림.
1.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하지만, 상대성이론 못지 않게 중요한 업적이 두가지나 더 있다.
바로 브라운운동과 광전효과. 그중에서도 지금은 광전효과가 중요하다.
광전효과의 가정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빛은 파동이나 입자로 단정되지 않고 두 성질을 모두 갖는다는 것이다.
또한 에너지의 불연속적인 상태를 갖는 '양자'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냥 받아들이자.)
양자역학은 빛 뿐만 아닌 모든 것들을 '양자화'하여 해석하는 시도를 하는 학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물리 이론의 수명과 입지는 세상을 더 잘 설명하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보는데, 그런 의미에서 고전역학에 비해 양자역학은 훨씬 더 엄밀한 설명들이 가능하여 주류 이론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이렇듯 양자역학의 시작점에는 광전효과가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아인슈타인은 어떤 의미로는 양자역학의 대부와도 같은 입지를 지니게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확률적인 해석방식과 비결정론적 세계관은 당시의 결정론적 세계관에 매료됐던 아인슈타인과 몇몇 과학자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고,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죽을때까지 양자역학을 거부했다고 한다.
...라는 이야기인데, 작중에서 아인슈타인이 주류 이론 물리학자들과 거리를 두고 원로의 입장에서 길을 제시하기만 하는 모습이 작중에서 잘 연출되어있다. 이젠 주류가 아니라고 스스로 언급하는 모습까지 나오는 것도 고증을 잘 살린 모습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2. 연쇄반응, 핵분열. 그리고 핵융합
연쇄반응에 대한 관점이 신기. 처음부터 감속재를 이용해야 하는, 연쇄반응이란게 일반적인 환경에서 일어나긴 어렵다고 배운 나와는 달리 저 시대에는 어떠한 데이터도 없이 바닥부터 이론을 만들어야 했다.
고2때쯤 핵분열은 원자핵이 분열하면서 나온 중성자들이 다시 다른 원자핵들을 분열시키는 연쇄반응에서 일어난다고 처음 배웠다. (기술가정 시간이었나... 물리시간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연쇄반응을 잘 일으키기 위해 오히려 감속재 등으로 중성자의 속도를 낮추는 컨트롤을 해줘야 핵분열이 가능하다는 것을 듣고, 별다른 이견 없이 받아들였다.
본 작품에서는 핵분열을 처음으로 상용화하고자 하는 물리학의 선지자들의 고뇌가 잘 녹아있다.
그중에서 고증을 잘 살린 백미는 연쇄반응에 대한 우려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는 연쇄반응이 의도적으로 일으키기 힘든 현상임을 알고있지만, 당대의 물리학자들은 연쇄반응이 멈추지 않아 모든 대기를 불태울 멸망의 단초가 되지 않을지 우려했었다.
내가 단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관점이지만, 어찌보면 처음으로 핵분열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공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또한, 수소폭탄에 대한 박한 평가가 작중에서 끊임없이 등장한다.
작품 중반, 맨해튼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중일때 수소폭탄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애드워드 텔러가 등장한다.
당시엔 핵분열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급급하여 평가가 박했지만, 현재 핵분열은 선진국이라면 쉽게 다루는 흔한 에너지원이 된데에 반해 핵융합 기반의 수소폭탄이 원자폭탄의 주류가 되고 핵융합 에너지의 상용화가 아직 요원하다는점을 고려하고 영화를 본다면 애드워드 텔러가 마냥 빌런으로 치부될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3. 하이젠베르크의 사보타주?
작중 초반부에서 오펜하이머가 독일이 핵무기 개발에 한참 앞서있다는 정보를 얻는다.
하지만 독일은 감속재로 흑연을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결론과 함께, 중수를 감속재로 대신 사용하는 실험을 이어가다가 결국 핵무기 개발에 실패했다.
작중에선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하이젠베르크가 수뇌부로 있던 독일의 핵개발 프로젝트팀은 사실 의도적으로 핵무기 제작을 방해했다는 의혹이 있다.
나치 독일에 저항하여 원자력이 이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엉터리 연구결과를 내놓거나 하는 식이었다는데, 물론 열심히 연구했으나 개발에 실패했다는 의견도 있어서 어느쪽이 맞을지는 모른다.
다만 영화에서 독일의 연구얘기가 나올때마다 하이젠베르크가 스스로 주장했던 사보타주 의혹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4. 폭축렌즈와 노이만. 공밀레의 정점
작중 등장하는, 트리니티 실험에 사용된 축구공 모양의 폭탄.
작은 조각을 하나씩 끼워서 만드는 이 구 모양의 폭탄의 구조를 폭축렌즈라고 한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듯, 전 방향에서 일정한 압력으로 플로토늄을 압축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연구가 필요했는데, 이 연구를 오펜하이머는 데이비드 힐에게 전담해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실제 폭축렌즈 개발에 가장 도움을 준 인물은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존 폰 노이만인데, 이런 천재가 6개월에 걸친 수치해석끝에 내린 결론이 축구공 모양으로 설계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공밀레의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5. 매카시즘
"야! 이거 빨갱이네??"
유신정권 무렵의 작품을 보면 한국의 안기부요원이나 공안검사가 뱉을법한 흔한 말이다.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나보다도 잘 알고있겠지만, 미국의 1950년대에도 약 10년정도, 이러한 풍조가 이어지고 있었다.
조지프 매카시. 미국 상원위원으로,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악명높은 사회적 선동을 매카시즘이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적이나 이권을 침해하는 사람들에게 공산주의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면 강도높은 청문회를 거친 뒤 모두 수감되거나 자격을 잃는 식으로 무고하게 피해를 봤다.
오펜하이머에서 등장하듯, 공산주의자 청문회는 입증책임이 없거나 기형적인 증인 채택이 이루어지는 등 교묘하게 헌법을 피해가며 초월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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